제목 (수필)제3회 책사랑 전국주부수필 공모전 대상작
작성자 관리자(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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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6-02 오전 8:54:39, 조회: 10136
불국동 민들레의 꿈
김영미(새마을문고불국동 분회)



토요일 오후, 목련의 배릿한 향이 열린 창으로 넘어온다. 분분한 향이 책을 읽고 앉았던 학생들의 코를 간지럽혔나보다. 옆구리를 찔러 눈짓을 주고받더니 참지 못하고 휭 한꺼번에 나가 버린다. 이 봄날 햇볕만으로도 마음이 달싹거리는데, 담장 밑 개나리까지 저리 손짓이니 실내에 있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리라.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 해도 그들은 생기발랄한 십대가 아니던가. 조심스럽던 발걸음이 계단을 내려서면서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뱉아내듯 요란스러운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잠시라도 짬을 내어 책을 읽고 빌려가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학생들이 사라지고 조용해진 공간에 혼자 남았다. 다시 책에 눈을 돌렸다. 두어 페이지를 넘겼을까 또 다른 방문객이 온다. 일전에 왔던 아주머니다. 처음으로 왔을 때 그 때도 마침 내가 당번을 선 날이었다. 어서 오시라 인사를 건네는 내게 대뜸 왜 이리 춥냐고 이래서야 손 시려서 책 읽겠냐면서 면박을 주던 사람이다. 그리고는 도서관의 작은 규모를 얕잡아보듯 “에걔, 무슨 도서관이 이렇게 작아.” 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처음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말은 삼켰지만 표정만으로도 실망스러워하는 걸 여러 번 보아왔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모르는 것을 지적을 해주듯 꼭 집어 말해놓고 소설책 두 권을 빌려갔었다. 그때 내 살이 꼬집히는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자기의 혀가 손톱으로 변했던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팠던 기억이 살아났지만 조용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빌려 가신 책은 재미가 있던가요”

“뭐 괜찮은 것 같던데 그 작가의 다른 책은 없나요?”

“그 작가의 책은 지금은 더 없고 다음 신간이 들어올 때 구비를 하도록 해놓겠습니다. 여기 희망 도서대장이 있으니까 기입해놓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장르가 비슷한 소설입니다. 한번 읽어 보실래요?”

그렇게 책을 권하고 웃음으로 배웅을 했다.



따뜻한 차를 한잔 타 들고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시립도서관에는 대 볼 것도 없이 장소도 좁고 책 보유권수도 작다. 이제 세 돐에 들어서는 짧은 연륜으로 토요일에만 개방되는 형편을 고려해보면 많은 발전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만 아는 우리끼리의 이야기다. 사람은 내남없이 보이는 것만을 보지 그 뒤까지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디 내어 자랑하기가 면구스럽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은 은근한 자부심과 애착을 가지고 공을 들이고 있다. 이곳 불국동에 ‘민들레 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을 같이 겪은 동지애가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씨앗은 독서회였다. 지리적으로 읍의 경계인 농촌동네에 살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여건이 되는 학부모들은 시내로 전학을 시켰고 그것이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전학을 간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힘들어했고, 남은 아이들의 상대적 열패감은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작은 규모의 사립학원만 있어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또 한 번 시내버스를 갈아타야만 하였다. 책이란 것이 손 가까이 있어도 펼쳐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게 떨어져서야 친해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뜻이 있는 엄마들이 모였다. 엄마들이 먼저 책을 돌려 읽으면서 생각을 넓혔다. 한편으로는 학교생활이나 학원문제 등 현실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독서회를 만들게 되었고 다시 도서관으로까지 발전했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기란 정말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싹이 난 씨앗은 성장 속도를 빨리한다. 마을 청년회관 이층에 장소를 빌리고 책장 두개를 구입하며 민들레 작은 도서관이란 현판을 달았다. 그날 우리들은 노란 민들레꽃 같은 따뜻함을 가슴에 피울 수 있었다. 막상 일은 저질러 놓고도 떡 버티고 선 책장의 빈 공간이 아득하던 기억이 난다. 과연 우리가 저 칸을 다 채울 수 있을지를 걱정했었는데 우려가 무색하리만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다른 책장을 들여야 할 만큼 여기저기서 많은 책이 들어오자 우리들은 감사해하며 정말 행복했다.



저녁에 회원들끼리 하는 분류작업은 언제나 늦어서야 끝이 났다. 스티커를 붙이다 읽었던 책이 보이면 기억을 되살려 좋은 구절이나 대강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또 보고 싶었던 책을 보면 서로 먼저 대출하겠다고 순서를 다퉜다. 책을 좋아하고 또 읽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어서인지 모두들 열심이고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착한 마음을 가졌다. 처음에는 도서관 안에 책은 모두 다 독파할 듯이 덤벼들었지만 곧 책이 불어나는 속도에 밀리고 말았다. 책을 읽기만 했는데도 그 모습이 예쁘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들의 도움으로 짧은 연륜에도 열개의 책장은 새 책들로 꽉 채울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아이들이 도서관 할아버지라 이름 지어 부르는 한 어른의 많은 후원이 있었다. 그 분은 많은 모임에 나가고 있고, 봉사도 해 봤지만 이 모임처럼 열심이고, 모이기만 하면 읽은 책을 토론하는 모임은 처음이라며 흐뭇해하신다.



우리 도서관의 재정은 빈약하다. 스무여명의 회원이 매달 내는 회비가 수입의 전부이다. 평일에 개방을 하고 싶어도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 부득이 토요일만 당번제로 돌아가며 문을 열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빌려가는 대출 위주이다. 앉아서 읽을 여건을 갖추고 싶지만 빠듯한 운영비 때문에 겨울과 여름에는 춥고 더워서 권하기가 미안하다. 한 겨울에도 석유난로 하나만으로 버틴다. 그것도 회원들끼리 있을 때는 불꽃을 낮춰 아낀다. 여러 가지 부대비용을 최대한 아껴 한 권의 책이라도 더 구비하려는 욕심이 있기에 회원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무릎 담요를 준비해오거나 더울 때는 얼음물을 들고 온다. 집에서 고구마나 찐빵 같은 간식도 가져와 나눠먹는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몰랐을 것들을 있음으로 해서 얻게 되었다. 우선 엄마가 책을 가까이함으로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오락실 앞에서 얼쩡거리거나 길거리에서 배회하던 아이들이 도서관에 들려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고 가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뿌듯하다. 그래서 여름에는 시원한 물 한 컵이라도 겨울에는 따뜻한 차와 과자라도 먹여 보내려 한다. 회원들은 당번이 아니어도 들러서 차도 마시고 고민도 의논하면서 편안한 잠시의 여유를 즐긴다.



도서관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엄마들 속에 많은 재주와 꿈들이 잠재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단순히 책을 빌려다보는 것만이 아니라 깨끗하고 아늑한 정이 있는 그래서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도서관으로 가꾸어지는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이제 그 재능들이 조금씩 자신감이란 힘을 얻어가고 있다. 곧 도서관이란 토양에 뿌리를 둔 나무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회원들은 공통된 꿈이 있다. 후일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조금 넉넉해진다면 아이들이 방과 후에 공부할 수 있는 책상 몇 개를 들여놓고 싶다. 전문적으로 학습을 지도할 능력은 없지만 독서실을 찾아 헤매야하는 시간이라도 아껴주고 싶다. 더 나아가 도서관을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연중무휴로 개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장 큰 희망은 다문화 가정의 주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 문화의 차이로 웅크리고 있는 그들을 볼 때마다 당장이라도 손을 잡아주고 싶다. 가까이 사는 친정 언니 같은 정을 나누고 싶지만 일시적인 관심으로 그쳐 더욱 외롭게 할까 조심스럽다. 그래서 선뜻 밖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생각보다 같은 주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우리들은 큰 도서관은 바라지 않는다. 작지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좋은 책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그 물을 먹고 피는 민들레가 많았으면 한다. 또 책을 쟁여두기보다 많은 주민들과 같이 향을 맡으려 한다. 잘 차려진 뷔페음식은 배는 부른데 맛을 음미하기는 어렵다. 반면 허름한 식당이라도 손맛이 밴 음식을 먹고 나면 잘 먹었다는 느낌과 함께 다시 찾게 된다. 우리 도서관은 다양한 전문 서적은 갖추지 못했다. 또 앞으로도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허나 비록 소식에 소찬이라도 봄 향기 잔뜩 머금은 민들레 한 송이를 곁들일 수 있는 정성이 있으면 족하다. 책만 아니라 이런 마음을 주민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공간 ‘불국동 민들레 작은 도서관’이 있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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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숙(saessak) (2011년 08월 18일 10:04)  
감동적인 글입니다. 진솔함이 느껴지고 마을문고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입장이라 동지애까지 느껴지네요. 당장 우리 집 책꽂이의 책들도 정리하여 마을 문고에 기증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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